어렸을 때 친척 집에서는 우리 가족을 유난히 많이 무시했다.
관심도 없었는데 경제적인 부분부터 학교까지,
늘 자신들과 우리를 비교하며 우리 가족을 힘들게 했다.
대학교에 와서도 비슷한 친구가 있었다.
성적을 잘 나온 친구가 있으면 "걔 나보다 성적 낮잖아" 라고 말하던
끊임없이 남과 계속 비교를 하던 그런 친구였다.
그 때의 나는 왜 저렇게까지 남을 무시할까? 비교하는 것 말고는 할 일이 없나?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나 자신이 없는 건가? 진짜 한심해보인다...
뭐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런 어른들을 보고 자라서였을까.
"난 절대 저렇게는 살지 말아야지" 라는 기준이 자연스럽게 생겼다.
그래서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치는 동안
난 단 한 번도 친구들을 겉모습으로 판단해 차별적으로 대한 적이 없다.
해당 에피소드들을 글의 맨 마지막에 남긴 이유는 단 하나다.
나는 누군가를 무시하며 살아온 사람이 아니었다는 것.
그래서 지금도 이 이야기를 자신있게 할 수 있다는 것.
하지만 싫어하던 사람들의 모습이 나에게서도 보이기 시작했을 때, 나는 꽤 큰 충격을 받았다.
정말 그러고 싶지 않은데, 이미 무의식적으로는 그런 행동을 한 뒤였다.
예를 들어 친구들과 술을 마시는 사람들을 보면
나도 모르게 그들을 한심하다고 생각하곤 했었다.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나는 너희와 다르다' 라는 태도가
점점 내 안에서 굳어가고 있다는 걸 발견했다.
그런 나의 모습은 전혀 좋아보이지 않았다.
'맞아, 사람마다 장단점은 분명히 있는거지. 사람들을 만나며 어울리는 그들은
다른 방식으로 인맥과 경험을 쌓고 있는거야. 절대 무시하면 안돼.'
아무리 이렇게 긍정적으로 생각해보려해도 거들먹거리는 내 행동은 똑같았다.
'아차' 하고 나서 집에 돌아와 답을 찾기까지 꼬박 2년이 걸렸다.
그렇게 나는 사람마다 타인을 무시하게 되는 이유는 저마다 다르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매일 친구를 만나고 술 마시는 사람들은 바보같다." 라는 말의 이면에는
"나도 저 친구들처럼 가끔은 쉬고 싶고, 놀고 싶고, 아무 생각 없이 수다도 떨고 싶어." 라는
내 마음이 제발 날 좀 알아봐 달라고 소리치고 있는 것이었음을.
그런 내 마음을 내가 먼저 알아준 이후로,
신기하게도 나는 더 이상 그런 행동을 하지 않게 되었다.
의식적으로 애쓰거나 스스로를 통제하려 하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그 이후로 나는 쉴 때만큼은 모든 걸 내려놓고
마음 편하게 쉬려고 하고, 가끔은 친구들과 술도 많이 마신다.
얼마 전 대학 친구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흥미로운 대화를 한 적이 있다.
내 이야기를 가만히 듣던 친구는 볼 때마다 괜히 신경 쓰이고
이유 없이 답답하게 느껴지는 친구가 있다며
자신도 모르게 그 친구에게 이것저것 조언하거나 참견하게 된다고 말했다.
그러다 이야기를 나누던 중, 그 친구 역시 한때는 통통한 체형이었지만
지금은 많은 노력을 통해 체중을 감량했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그 친구의 경우는 무시라는 감정과는 거리가 멀다고 느껴졌지만 비슷한 맥락이 아닐까 싶었다.
친구는 잠시 생각에 잠겼고, 한참 뒤에 "진짜 그럴 수도 있겠다" 라며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쩌면 그 친구에게 계속 말을 하게 되었던 이유는 그 사람 자체 때문이라기보다,
자신이 지나온 과거의 모습과 감정이 무의식적으로 떠올랐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너무 진지한 이야기였나 싶기도 했지만
오랜만에 솔직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정말 즐거운 시간이었다.
이 일을 계기로 나는 사람마다 타인을 무시하게 되는 지점은 모두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그런 말들은 본인 스스로에게 하는 말과 다름없으니 너무 상처받을 필요는 없다.
그리고 내가 정말 여러 사람들을 보면서 느낀 것은,
좋은 학벌을 가졌거나 좋은 기업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일수록
자신이 어떤 노력 끝에 그 자리에 왔는지 알기에 남을 쉽게 무시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영국의 좋은 대학교를 졸업하신 선배가 내게 이런 말을 해준 적이 있다.
"여기 대학교에 와보니 나보다 똑똑한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자연스럽게 겸손해지게 되더라."
내게 책 한 권을 건네주며 그렇게 이야기해주었고, 그 말은 꽤 인상 깊게 남았다.
또 사소한 의견 조율 과정이 있었을 때 한 분이 "나는 너희 의견에 따를게" 라고 말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자신의 생각을 앞세우기보다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존중하는 태도가 인상적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분은 카이스트에 다니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19년도 교육기관에서도 팀을 결정하던 과정에서
무시라는 감정에 대해서 이야기했었던 적이 있었다.
카이스트 다니시던 그 분도 사람을 무시하는 태도를 싫어했던 것이 가장 기억에 남았다.
이런 경험들을 통해 나는 진정으로 뛰어난 사람일수록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기보다 겸손함을 갖추고,
다른 사람을 존중하는 경우가 많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흔히 '빈 수레가 요란하다'는 말을 하는데, 그 말이 괜히 생긴 말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겸손함을 갖추며 부족한 부분을 계속해서 보완해나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돌아보면, 내가 저 감정을 가졌던 이유 역시,
저런 이유로 무시당했던 기억과 감정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더라.
본인 스스로를 무시하기에 남도 쉽게 무시할 수 있는 것이다.
상대방을 보며 자신의 모습을 투영해 무시하는 것이며,
자신의 무지함을 드러내는 것이니 안타깝게 여기고 흘려보내면 된다.
이제는 모두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고,
결국 무시당하지 않으려면 끊임없이 스스로를 발전시키는 힘이 필요한 것 같다.
운동부였던 영향인지, 나는 어렸을 때부터 생각 뿐 아니라 행동 역시 그렇게 했던 것 같다....
초등학교 때, 전학생이라는 이유로 괴롭힘을 당하고 소외된 친구가 있었다.
나는 그 친구를 공개적으로 챙기지는 못했지만, 뒤에서 조용히 챙겨줬다.
나 역시 전학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나까지 소외될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다.
미안한 마음에 '뒤에서 챙겨줘서 미안하다'는 짧은 쪽지를 건네고,
화장실가서 초코파이를 나눠 먹기도 했다.
주말에는 외할아버지(외가쪽은 잘사셨다) 댁 2층에서 물놀이를 하고 튜브를 던지며 놀았으며,
그 친구 아버지가 일하시던 공장에도 함께 가곤 갔다.
다행히도 그 친구는 정말 착했다.
뒤에서 챙겨주는 내 상황을 이해해줬고,
다른 친구들과 친해지기 위해 나를 이용하려 하지도 않았다.
마지막엔 고맙다는 인사를 남기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사를 갔다.
그 친구는 아무 잘못도 없었다. 그저 전학생이라는 이유로 배척당했을 뿐이었다.
지금 와서 다시 생각해보면, 그 친구는 무슨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저 '적응'이라는 배움의 과정을 지니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와의 교류가 그 과정에서 도움이 되었을 수도 있다.
고등학교 때는 다른 친구들이 피하고 놀리기만 했던 통통했던 친구가 있었다.
나는 그저 사람 대 사람으로, 특별할 것 없이 대했다.
2년 뒤 '고마운 친구에게 감사 편지 쓰기' 활동에서
그 일을 계기로 생각이 달라졌고, 자신감도 생겼다며 고맙다는 말을 전해왔다.
또 한 번은, 무리에서 떨어져 나온 친구와 함께 걸어가던 적이 있었다.
그 친구에게 대놓고 시비를 거는 사람이 있었고,
나는 그 모습이 못마땅해 가볍게 한마디를 던졌다.
앞선 두 친구의 경우엔 특별한 이유가 없어 보였지만,
마지막 친구는 나중에 알고보니 스스로를 피해자인 것처럼 보이게 하던 사람이었다.
결국 그 갈등은 나에게까지 번졌고,
싸움을 걸었던 친구는 자신의 무리를 전부 데리고 왔다.
그날 모였던 인원이 열일곱 명이었다는 걸 아직도 기억한다.
나는 풍물부 친구한테 선생님께 말씀드려줄 수 있냐고 문자를 보냈고,
그 일로 모두 교무실에 불려갔다. 그리고 그 친구는 나를 배신한 채, 다시 그 무리로 돌아갔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싸움은 결국 당사자들끼리 해결해야하는 게 맞다.
누가 진짜 피해자인지, 혹은 누군가가 피해자인 척하고 있는지는
쉽게 단정할 수 없다는 것도 이제는 알았다.
그래서 이제는 누군가 나에게 갈등 상황을 이야기하면
귀찮으니까 너희끼리 해결하라고 말하고, 그럴 만한 이유가 있겠지 하며 굳이 개입하지 않는다.
결국 그 일로 가장 큰 피해를 본 사람은 나였기 때문이다. 굳이 저들 인생에 개입하고 싶지 않다.
그리고 분명 그들은 서로의 갈등에서 배울 점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때 우리를 혼내셨던 선생님은 정말 무서운 분이셨는데, 얼마 전에도 연락을 먼저 주셔서 감사했다.
나도 정말 엄청 많이 혼났는데, 똑같이 공평하게 혼나서 좋았던 것 같다.
직접 말씀드린 적은 없지만, 정말 많이 감사했다.
그리고 졸업하기 전, 그 무리 중 한 명이 그 날 일은 미안했다며 나에게 사과를 했다.
지금 돌아보면, 어릴 때의 나는 무리를 지어
누군가를 괴롭히는 사람들을 유난히 한심하다고 여겼던 것 같다.
그냥 거리 두고 무시하면 될 일을, 왜 굳이 누군가를 의도적으로 고립시키고
시비까지 걸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 방식은 용기도 없고 비겁하며, 지나치다고 느껴졌다.
얼마 전에도 초등학교 때 정말 친했던 친구가 이 일을 먼저 꺼내면서
그 때 나를 도와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했지만,
도와주지 않는 게 당연한 거고,
누군가의 도움을 기대하며 했던 행동도 아니었다고 말했다.
그 친구 입장에서는 나와 별다른 접점도 없던 상황에서
갑작스럽게 나에게 안좋은 말을 들었으니 당황스러웠을 것이다.
지금 돌아보면 겁도 없었고, 솔직히 흑역사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왜 그랬을까 싶지만, 과거의 나는 그것이 옳다고 믿으며 살았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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